[공연] Disney Punk (청음회) / 뇌태풍

2009. 9. 7. 13:51 기타




1.
나는 문학회 출신인데, 십 년이나 된 99년의 문학회를 생생히 기억한다. 어느 밤에 우리는 약한 조명 아래서 시를 읽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과, 어쩌면 그 둘 모두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날 우리는 불편한 의자에 앉아 때로 어지러운 청춘을 노래했고 때로는 시국을 근심했다. 치기어렸지만 그래도 우리의 목소리는 밝았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2.
뇌태풍 청음회 소식을 안 건 금요일이다. 무심코 방문한 카페에는 청음회가 공지되어 있었다. 새로 나올 음반의 청음회라니 무척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 주일 일정에는 넣지 않았다. 이런 류의 잔치는 주로 지인들의 방문이 더 환영받더라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었으니까. 외딴 섬처럼 고립되는 불상사를 염려했던 것이다.


3.
그런데 일정이 틀어졌다. 원래 계획되었던 만남은 취소되었고, 청음회에 가지 않으면 달리 할 일이 없도록 딱 그만큼의 시간이 비었다. 그래도 역시 망설였다. 청음회에 가고 싶은 마음과 난처해지기 싫은 마음이 반반이었다. "그럼 일단 그 앞에서 대충 분위기를 살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근처 카페나 가자." 부끄럽지만 이런 말을 했을 정도로.








4.
뇌태풍은 남성 그룹이 아니다.


5.
2시50분경, 꼴사납게 인근 편의점에서 서성이다가 (제목을 읽고 클릭한 이상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결말이지만) 결국 들어갔다. 남성 그룹이라기엔 아무래도 억울할 여성 보컬 류태 씨가 다행히 우리를 반겨주었다. 반겨주었다고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는 게, 딱 세 명 와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알고 보니 관계자) 우리와 거의 동시에 들어온 여성 3인조까지 더해 인원은 순식간에 여덟 명으로 늘어났다. 그 후 다섯 명이 더 합류해 모두 열세 명이 되었다.


6.
살롱 바다비의 그 자리에서 각자는 각자의 생각을 했겠지만 나는 유독 십 년 전을 되새겼다. 양초 하나와 각종 다과를 둘러싼 나무 벤치에 어설피 모여 앉은 그 모습은 마치 99년도의 문학회 같았다. 한 곡이 끝나면 우리는 박수를 쳤고, 주최측이 해당 곡에 대해 짧게나마 코멘트를 하면 우리는 다시 박수를 쳤다. 신나는 곡은 말할 것도 없이 차분한 곡도 심각한 곡도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정말이지 시 낭송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열세 곡을 순서대로 모두 들었다. (그렇다. 얄궂게도 열세 곡이었다.)


7.
뒤풀이 자리까지 참석하는 건 아무래도 최초의 고민이 무색해지는지라 (기념촬영을 끝으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8.
요상한 감상에 젖는 바람에 정작 청음회의 감상에 대해서는 빠뜨릴 뻔했다. 주옥같은 곡들이었다. CD를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직거래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기를 희망했건만 발매는 아직이란다. 뇌태풍 마이스페이스에서 노래들을 줄기차게 틀어대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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